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무 덴노 (문단 편집) === [[사이메이 덴노|어머니]]의 붕어까지 === 오오아마 황자의 아버지인 조메이 덴노는 그가 아직 어렸을 때 붕어했다. 형인 나카노오오에 황자가 고교쿠 4년(645년) 6월 12일에 20세의 나이로 '''[[을사의 변|잇시(을사)의 변]]'''을 일으켜 소가노 이루카(蘇我入鹿)를 참살했을 때, 오오아마는 나이가 어려 암살 음모에는 가담하지 않았다. 이 대사건의 결과로 아스카 시대를 호령했던 소가씨 본종가는 몰락했고, 화가 나 퇴위한 고교쿠 덴노의 뒤를 이어 그녀의 남동생인 [[코토쿠 덴노]]가 즉위했다. 그 뒤 하쿠치 4년(653년)에 외숙부인 코토쿠 덴노와 사이가 틀어진 나카노오오에가 나니와(難波)에서 야마토(倭)로 옮길 때 오오아마도 행동을 함께 했다. 이윽고 고립된 코토쿠 덴노가 병으로 죽자, 퇴위했던 고교쿠 상황이 복위하여 [[사이메이 덴노]]가 되었다. 오오아마는 황태자가 된 형 나카노오오에의 딸, 즉 조카를 차례대로 4명까지 아내로 맞이했다. [[백제부흥운동]]을 지원하기 위한 원병 파병문제로 어머니 사이메이 덴노와 형 나카노오오에가 지쿠시(筑紫)로 궁을 옮길 때 오아마도 아내를 데리고 함께 갔다. 그 여행 중인 사이메이 7년(661년) 1월 8일에, 아내 오오타노 히메미코(大田皇女)는 오오쿠노우미(大伯海)에서 딸 오오쿠노 히메미코(大伯皇女)를 낳았다. 다른 황자인 오오쓰 황자(大津皇子)의 이름도 지쿠시의 나오오쓰(娜大津)에서 태어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. 또한 왕녀 누카타(額田)를 아내로 삼아 자식을 두었는데, 누카타노 오키미는 나중에 형 나카노오오에의 황후가 되었다. 이 [[삼각관계]]가 훗날 형제가 불화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있다. 왜냐하면 위에 나왔듯이 실제로는 출생 문제 때문에 그냥 본래부터 사이가 나빴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. 원래 사이가 나빴는데 여자 문제 때문에 더 틀어졌을 거라고 볼 수도 있기는 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